나홀로 제주도 여행 후기

이번 나홀로 여행은 금요일, 평소같았다면 일주일이 벌써 끝났냐며 주말만을 기다리느라 일에 집중하지 못할 하루였겠지만, 회사 차원에서 급하게 전체 휴일로 지정되어 평일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게 되었다.

고등학생 때 수학여행으로 온 이후로 성인이 되어서는 처음 오게된 제주도이기에 어디를 가야할까, 뭘 해야할까 고민이 되기도 했지만, 지금의 삶이 너무 팍팍한지라 이렇게 나만의 시간이 주어진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이렇게 계획 없이 가도 되나 싶을 정도로 정해진 것이 없었다. 여행 전날 우도에서 바이크를 타야겠다고 결심했지만 생각보다 쨍한 햇빛과 습도를 경험하니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정해진 것들이 없어서 스트레스 없이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제주 공항에 내리자마자 월정리 해변으로 떠났다. 하얗게 펼쳐진 모래사장과 제주도만의 검은 현무암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면서 에메랄드 물빛이 햇빛에 아름답게 빛나는 것을 도와주는 듯 했다. 해변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책이라도 좀 읽어볼까했지만, 내리쬐는 햇빛과 습도에 압도되어 무작정 해변 도로를 따라 걸었다. 작년 여름부터 애용해오고 있는 검은 양산의 보호를 받으며 조금 걸으니 쉴만한 정자를 발견했고, 그 곳에서 한숨 돌리며 누워서 책을 읽다가 잠시 눈을 붙였다.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기 위해 잠을 많이 못잤더니 더 달콤했고, 이 시간에 이렇게 좋은 배경을 주변에 두고 여유를 부릴 수 있어 행복했다.

이번 여행에는 책을 한 권 들고 갔다. 가수 윤종신님의 산문집인데, 그동안 작곡하신 곡들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와 생각들을 담은 내용의 책이다. 많은 내용들에 공감하며 마음에서 쉽게 잊혀지지 않는 구절들은 밑줄까지 쳐가면서 읽었는데, 지금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내용은 - 그런 윤종신님 조차도 본인이 가는 길에 대해서 고민하며 흔들린다는 것이다.

때로는 괜찮을 거라고 애써 미소 지으며 못 본 척 눈을 감는 것보다는 내 앞에 들이닥친 문제를 똑바로 응시하고 그 까마득한 오르막길을 뚜벅뚜벅 걸어올라가는 게 정답일 수도 있어요. 어쨋든 끝은 있을 테니, 어디로 가든 얼마나 걷든 결국에는 정상에 도착할 테니, 내가 어디쯤 왔는지 돌아보면서 전전긍긍하고 앞으로 얼마나 남았는지 내다보면서 노심초사하기보다는 나의 한 걸음 한 걸음에 집중하는 게 훨씬 더 현명한 자세일지도 몰라요.

우연히 가져온 책이 빠르게 읽혀 자신감을 얻기도 했고, 요즘따라 남의 글을 읽는게 너무 재밌어서 그랬는지 첫째날을 마무리하기 전, ‘소심한 책방’이라는 독립서점을 들렀다.

윤종신님의 책을 읽으며 멀지 않은 미래, 내가 3, 40대가 되었을 때를 한 번 상상해보게 되었다. 그러던 중 ‘흰머리 휘날리며, 예순 이후 페미니즘’이라는 책과 ‘글쓰기의 최전선’이라는 책 2권을 구매했는데, 첫번째 책은 예순이 지난 작가의 입장에서 느끼는 것들, 특히 노인들에 대한 사회의 인식과 노인의 입장에서 많은 생각을 해보게 해주었다(다시 돌아보니 ‘나이든다는 것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가지고 곱씹어보며 책방을 나온 것 같다). 사실 어려운 말들이 너무 많아서 빠르게 흝듯이 읽게 되었다. 나중에 천천히 다시 읽어봐야겠다.

비자림을 걷던 도중 바람이 잘 부는 곳에 자리를 잡고 책을 읽는 느낌은 잊지 못할 것 같다

두번째 책은 요즘의 내 삶과도 연관이 있을 수 있는데, 글쓰기 수업과 학습 공동체를 이끌고 계신 작가님의 책이었다. 아직 읽고있는 중이지만 나처럼 글을 쓰는 것을 망설여하고 어색해하는 다른 학자(라고 여기서는 부른다)들의 사례들을 보며 마음의 위안을 얻는 중이다.

질문, 질문, 또 질문

이번 여행에는 딱히 정해진 목적도 없었고, 그렇다고 어떤 고민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떠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동안 부족했던 멍때리기(?)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유, 그런 것들에 대한 시간들을 온전히 누리고 싶었다. 이런 덕분에 나에게 주어진 혼자만의 시간들 속에서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생각의 조각들을 이어붙여보기도 하고, 정답없는 물음도 던져보았다.

‘나는 왜 질투를 느끼는 걸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

‘돈은 어떻게 버는 걸까? 왜 벌어야하지?’

제주도의 파란 하늘과 양 옆으로 펼쳐진 돌담길을 걷다보면 자연스럽게 주문처럼 이런 정답이 없는 질문들을 머릿 속에서 주문처럼 외웠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럴듯한 정답 조차도 생각해내진 못했지만, 이런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파고드는 생각들을 관찰하고 만끽하는 이 과정이 너무나도 즐겁다. 윤종신님의 책에서처럼 이런 질문들의 답들도 흘러가는 시간 속의 내 위치에 따라 변할 것이다. 어쩌면 지금 답을 알아냈다고 생각한 것들도 언젠가는 다시 의문을 던지며 어딘가의 길을 걷고있는 날이 오겠지?

눈물 젖은 해물 라면을 드셔보셨습니까?

평범한 먹방 영상을 촬영하고 있다가 봉변(?)을 당했다…!

여행 둘째날, 점심을 먹기 위해 성산일출봉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해물 라면이 먹고싶어 자리에 앉았다.

옆 테이블에는 어린 두 딸과 부부가 있었는데, 아버지로 보이는 분이 딸들에게 그들이 진지하게 듣기에는 다소(?) 깊이가 있는 연설아닌 연설을 하고 계셨다. 저 나이 때의 우리 아버지가 나에게 해주셨던 이야기들을 떠올리며 두 딸의 지루함에 깊은 공감이 되어 무심하게 라면 속의 조개를 골라먹고있었는데,

‘이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 그 사람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생각들이 있을텐데, 우리 주희랑 민희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해. 이 생각 저 생각들에 흔들리지 않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 거.’

아버지의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내 마음을 휘젓고 지나가버렸다. 제주도의 한 식당에서 두 딸의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한 메세지가 우연히 서울에서 혼자 여행온 한 청년의 마음의 종을 울리다니.

급하게 면만 건져먹고 일어섰다. 밥도 먹고 가라는 주인 아주머니의 따뜻한 정을 뒤로한 채 급하게 계산을 하고 나가려다가, 복잡했던 내 마음에 큰 울림을 주신 그 아버지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해야할 것 같아서 쭈뼛쭈뼛 다가가 감사하다는 맥락없는 말만 급하게 던지고 식당을 나왔다. 가슴 속에 뜨거운 무언가를 뱉어내야할 것 같아서 눈물을 조금 뱉어냈다.

최대한 그 식당에서 멀어지기위해 걸음을 재촉하며 이 감정과 상황들을 들여다보았다. 처음보는 두 딸의 아버지의 말에 무엇이 나를 이토록 걷게 만들었을까. ‘나만의 생각은 뭐지?’, ‘나도 내 생각은 가지고 있는데?’

나름의 방어적인 생각도 해보고 단어들에 대해서 열심히 생각해보았지만, 끝내 정답은 찾지 못했다. 그냥 요즘 좀 울고싶었던 걸까? 뭐였을까? 아무튼 그런 아버지를 두 딸들은 자부심을 가져도 될 것 같다.

우리 아버지도 나에게 이런 의미심장한 설교(?)를 많이 해주시곤 하셨는데, 두 딸의 반응과 나도 별 차이가 없었던 것 같다. 이제는 그런 말씀을 해주셨던 아버지의 마음도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고, 서로 가지고있는 생각들을 친구처럼 나눠보고싶다. 더 많이 표현해야하지만 쉽지 않다. 어머니 아버지 사랑해요.

일상으로 복귀하며

월요일이 다가오기 전, 혼자만의 시간들 속에서 들었던 생각들과 감정들을 그대로 흘려보내기 싫어서 무작정 컴퓨터 앞에 앉기는 했는데, 어떻게 마무리해야할지 모르겠다. 여행 잘 다녀왔냐는 팀원들의 질문에 개운하게 웃으며 인생의 정답을 찾은 마냥 대답하기에는 뭔가 아직 찝찝한게 많다. 실제로 속이 그렇다고 많이 편해진 것도 아니고.

그럼에도 하나 확실하게 생각드는건 ‘나는 완전하지 않은 존재이고 흔들릴 것’이라는 것이다. 충분히 부정하고싶고 인정하기 싫은 말이지만, 이것을 인정했을 때 마음이 한결 나아지는 것을 경험했다. 결국엔 이런 몸을 이끌고 인생을 살아가야한다면, 이런 나라도 아끼고 사랑하며 조금이라도 사람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줄 수 있다면 얼마나 갚진 인생일까?! 안좋은 감정과 생각들, 피하지말고 좀 더 부딪히자.

젊음의 매 순간이 기회라는 것을 잊지 말자.